감사하며 사는 사람-김승남 회장
ISOBANK 200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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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눌만한 글인 것 같아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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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이 ‘베풂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성공법칙, 사람에 투자하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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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두 달 전에 한 권의 책을 냈다.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자전적 에세이를 두고, 김 회장은 “가슴으로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꼬박 4개월 동안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까지 글을 썼다는 김 회장은 “집필을 하면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책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출판사의 권유가 있었다. 주저하는 나에게 들이민 설득의 논리는 두 가지였다. ‘당신은 54세의 나이에 1천만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직원 3명과 함께 창업(조은시스템)을 했지만 매출 1천억원의 회사로 키웠다. 나이 많은 사람도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논리였다. ‘당신은 21년 동안 직업군인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사회에 진출했지만 46세의 나이에 처음 익힌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56세 때 IT기업(잡코리아)을 창업해 1천억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회사로 키웠다. 군인 등 공직자 출신도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논리였다. 그래서 감히 용기를 냈지만, 집필을 하다가 몇 번이나 울어야 했다.”

실제로 김 회장에게 행운과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년을 3년 앞둔 시점에 겪어야 했던 두 차례의 진급 누락과 눈물의 퇴역, 지방은행이라는 새로운 직장에서 뜨거운 열정을 발휘해 영업 실적 1위를 기록했지만 군인 출신이라는 ‘낙인’ 때문에 내던졌던 사표, 친지에게 서준 재정보증이 잘못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고위직에서 성공한 뒤 퇴직했음에도 사회에 나오면 뜻밖에 불만을 잔뜩 늘어놓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불만을 가질 만한 사람이 오히려 현실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루어가는 모든 것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 그것이 행운이든 불행이든, 혹은 성공이든 실패이든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운명이나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감사하고 겸허하게 그 뜻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든 성공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원망하면 원망할 일만 생긴다’는 원리를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김 회장은 “누구에게나 자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무기가 있다”고 했다. ‘감사’와 ‘겸손’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감사’는 프로의 덕목이자 경쟁력의 바탕이라고 강조했다. “감사는 ‘무적(無敵)의 자신감’이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런 그였기에 전직한 보험회사의 이사직 제의를 거부하고 부장을 자원했고, 밑바닥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다.

“한 달 동안 여 경리사원 옆에 책상을 배치하고 그녀가 하는 모든 업무를 그대로 따라했다. 보험금 납입 정리 같은 일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해야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계산기로 직접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전표를 손으로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스 김이 야근을 하면 같이 하고, 밥을 먹으면 같이 먹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보험 관련 자금 관리는 웬만큼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금부 등 다른 부서의 말단 직원들과도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 한 달 동안은 보험 영업을 배웠다. 이번에는 대리와 차장 옆에 책상을 붙여놓고 세부 내용을 일일이 배웠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거의 모든 보험 업무를 터득하게 되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따라서 남과 다른 열정을 가지고 일에 미치지 않는 한 절대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실제로 김 회장에게도 무슨 일엔가 미쳤던 기억이 있다. 그는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까지 나는 4번을 미쳤는데, 앞으로 2번은 더 미칠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미친 것은 바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의 일이다. 보병학교 작전교관을 하던 시절, 점심 후 장교식당에서 바둑을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 구경한다고 서 있었는데 하루는 선배 한 분이 자극을 주었다. ‘작전교관이 바둑도 못 두고 무슨 작전을 하나!’ 나는 그날 당장 가장 큰 기원을 찾아가 염찬수 프로3단을 만났고, 6개월 동안 개인지도를 받았다. 어깨 너머 배운 바둑보다는 정통 바둑 수업을 받아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부터 날마다 퇴근 후에 바둑 공부를 했는데, 특히 주말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바둑에 미쳐 살았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조남철 바둑>이나 <시까다 바둑> 등 바둑책 10여 권을 깡그리 외워서 보지 않고도 기보(棋譜)를 놓게 되었다. 그리고 8개월 만에 아마 4단이 되었다.”

김 회장이 바둑 다음으로 미친 것은 컴퓨터, 인터넷, 외국어였다(앞으로는 엔터테인먼트, 고고학․인류학에도 미칠 생각이라고 한다). 특히 각각 40대 중반과 50대 중반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에 미쳤기에 IT기업인 잡코리아를 창업할 생각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T=G×a’(더 크게 주면 더 크게 얻는다 ; T-Take, G-Give)라는 김 회장의 인생철학이 발휘됐음은 물론이다.

“다른 사이트와 차별화를 시켜 모든 구직자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김화수 사장은 경영을 맡으면서 잡코리아를 구인․구직자들이 북적이는 ‘온라인 장터’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구직자에게는 무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대신 구인 목적의 기업에게는 유료서비스(채용광고, 이력서 검색수수료 등)를 실시했다. 다른 업체들이 수익을 내고자 개인회원에게까지 유료서비스를 할 때 무료서비스를 함으로써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개인회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자 한 것이다. 이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결국 사이트 방문자수가 폭등했고, 이는 곧 매출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후 5~6위권에 있던 ‘휴먼피아’를 인수해 선두 굳히기에 나섰고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거두게 되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기반으로 독특한 수익구조를 안착시키자 세계 최대의 리쿠르팅 서비스 업체인 미국의 ‘몬스터닷컴’이 1천억원을 투자했다(김 회장이 투자한 초기자본은 3억원이었다). 김 회장은 “성공은 혼자서 이룰 수 없는 법”이라면서 “아름다운 사람과의 네트워크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에 코치와 멘토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구성원들의 지적 수준뿐 아니라 운영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과정에서 앞선 회사를 만들 수 있다. 능력 있는 멘토를 통하여 배운다면 더 쉽고 빠르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이 없었다면, 아브라함 링컨에게 인내와 사랑을 가르쳐준 어머니라는 스승이 없었다면, 김구 선생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고능선 스승이 없었다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생의 고비에서 소중한 코치와 멘토를 만났기에 그들은 거듭날 수 있었다. 나 역시 힘들 때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자문을 얻을 수 있는 코치와 멘토가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실력을 보완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들은 내 인생의 새로운 동력이었다.”

김 회장의 삶은 비주류(非主流)의 역정이었다. 매번 전문가 혹은 경력자라 불리며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주류(主流)들에게 보이지 않는 홀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런 상황을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았다. 진정한 프로를 꿈꾸며!

“아마추어는 시간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프로는 과업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프로는 밤을 새워서라도 작업을 하고, 일이 없으면 대낮이라도 잠을 자거나 다른 일을 한다. 바둑을 둘 때도 대부분의 프로는 좋은 착점을 많이 남겨두고 즐기면서 바둑을 두지만 아마추어는 좋은 착점을 보면 참지 못하고 덤비다가 대세를 그르치곤 한다. 프로는 회사에 이익을 창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회사에 이익을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서든 중요하다. 프로처럼 일하는 임직원을 얻는 것, 그것은 축복이다. 우리 회사가 4명의 임직원과 1개의 고객사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3200여명의 직원과 4만5000여개의 고객사를 보유한 회사로 성장한 비결도 여기에 있다.”

강연 말미에 “고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가 유한재단을 만들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난 것처럼 나도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밝힌 김 회장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만 생기며, 원망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원망할 일만 생긴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김승남 회장의 이력서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 육군대학교 정규과정 졸업
▲ 고려대 경영대학원 8기 수료
▲ 고려대 언론대학원 언론과정 6기 수료
▲ Wharton KMA CEO 과정 수료
▲ 국방관리연구소 책임연구원
▲ 충북은행 안전관리실장, 조사부장
▲ BYC 생명보험 상무이사
▲ 1993년 (주)조은시스템 창업, 회장
▲ 1996년 (주)잡코리아 창업
▲ 국무총리비상기획위원회 비상근 위원
상훈: 충무무공훈장, 미국동성무공훈장, 인헌무공훈장, 국무총리 표창 외
저서: <고맙습니다>

<출처> 사단법인 인간개발연구원